왜 독서만으로는 문해력을 해결할 수 없는가?
독서의 다른 이름은 ‘수렴능력 강화 교육’이면서, ‘주관적 이해능력 강화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독서를 왜 수렴능력 강화 교육이라 부르는가?
그건 독서만이 받아들이는 능력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수렴이란? 흡수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독서를 하면서 떠들거나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독서를 한다고 하면서 말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동시에 한다면 그건 독서를 하고 있지 않는 겁니다.
그럼 한걸음 더 나아가 독서를 왜 주관적 이해능력 강화 교육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그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독서는 혼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이해하는 공부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혼자 이해하고 혼자 세계관을 정립하게 되니가 주관적 이해능력 강화 교육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재밌고도 놀라운 것은, 이러한 주관적 이해능력이 문해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죠.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문해력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문서에 적힌 내용을 적은 사람과 읽는 내가 똑같이 해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문해력은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불필요한 싸움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능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 겁니까?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즉, 문해력은 글을 적은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이 똑같이 해석할 수 있는 객관성을 기본으로 하는 겁니다.
최근에 ‘심심한 사과’ 사건이나 ‘금일’을 ‘금요일’로 해석하는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문해력 문제를 촉발시키게 되었던 이유는 남들과 똑같이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 한, 객관적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인 거죠.
그렇다면 독서를 통해 얻어진 주관적 이해력을 문해력이 요구하는 객관적 이해력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있습니다.
‘북잼스’에 그 답이 있습니다.
전략적 독서토론 ‘북잼스’에 그 답이 있는 겁니다.
‘북잼스’가 제시하는 답은 ‘토론’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객관성이라는 것이 확보가 되고 마침내 남과 같은 해석능력인 객관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즉, 독서에서 멈추지 말고 토론까지 이어졌을 때,
독서에서 얻은 주관적 이해 능력이 문해력이라는 객관적 이해 능력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의 독서 시장은,
마치 독서만 하면 독해력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선전을 합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북잼스는 이러한 거짓된 선전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독서토론의 역사를 대한민국에 펼쳐 나가겠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어른들의 책임이니까요.
저희 ‘북잼스’가 걱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아이들입니다.
이제 북잼스가 나서서 말하겠습니다.
독서에서 멈추지 말고 토론까지 해야 문해력이 해결된다고!
함께 하는 독서가 아니면 문해력은 절대로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이제 북잼스가 독서토론 세상을 위해 올바르게 실천해 나가겠습니다.